(스크랩) 백두대간

[스크랩] 한북정맥 : 1 부

트둥 너굴 2009. 10. 1. 15:40

 

                                종주하는 한북정맥

 

13개 정맥 중에서 유일하게 남북한에 걸쳐 있는 한북정맥은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이 남진을 하다 776km지점인 강원도와 함남의 경계를 이루는 추가령에서 분기하여 백암산(1.111m),과 법수령을 지나 휴전선 가까운 오성산(1,062m)을 넘어 남한 땅의 적근산(1.073m)을 지나 대성산(1.175m)에 이른다. 남쪽의 시발점이기도한 수피령(780m)에서 출발하는 정맥은 강원도의 복주산(1.151m)과 광덕산(1.046m)을 지나 경기도의 백운산(904m), 운악산(936m), 서울의 도봉산(740m)과 북한산(837m) 줄기인 상장봉(534m)과 고봉산(208m)을 지나 파주의 장명산(102m)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북으로 임진강과 남으로 한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정맥은 북쪽의 70여km와 휴전선 대성산구간의 5km의 접근이 불가능하여 수피령에서 장명산까지 170여km에 이르는 산줄기를 종주하게 된다.

 

              제 1구간 수피령(780m) - 광덕고개(664m) 22.5km

 

해발 780m인 수피령은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에서 사내면의 사창리를 넘나드는 56번 국도이지만 지리적인 여건상 최전방의 보루로써 작전 통제권에 있는 관계로 민간인의 접근이 불편한 곳이다. 송우리를 지나 포천으로 향하는 차창너머로 스치는 야산들이 연녹색으로 산뜻하게 갈아입고 개나리 진달래가 절정을 이룬지도 보름이 넘었다. 하지만 북녘 땅 철원에는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양지바른 산 비알에 연분홍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한북정맥의 시발점에 선 우리들은 9개 구간으로 나누어 진행될 170여 km의 긴 여정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산신님께 예를 올리고 급사면 절 개지를 치고 오른다. 거친 호흡으로 비지땀을 흘리면서 뒤 돌아보는 대성산은 산허리를 가로 지르는 비상도로가 분단조국의 슬픈 현실을 대변해준다. 정수리의 시설물들이 녹슨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긴장이 고조되고, 말 못하는 미물들은 자유로이 넘나들건만 스스로 채운 족쇄로 발이 묶여 오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30여분 뒤 촛대봉 헬기장에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매월당 김시습의 전설이 서려있는 복계산(1,057m)이 자리 잡고 있다. 정맥 길에서 비껴나 있는 탓에 다음으로 기약을 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촛대봉을 우회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완만한 능선의 종주 길은 맑은 하늘아래 숨을 조이는 긴장감으로 산과 계곡이 물결친다. 나른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운무 속에 보랏빛 초롱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새소리 지저귀는 천국에서 느려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복계산 갈림길인 950봉을 1시간 20분 만에 통과하고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복주산을 향해 달려간다. 허물어진 진지를 보수하는 장병들의 늠름한 모습을 바라보며, 내 젊은 시절 월남의 쟝글에서 사선을 넘나들던 그때를 떠 올린다. 4시간 10분 만에 복주산의 정상에 올라서면 아담한 표지석이 반겨주고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은 중부전선의 고봉들을 굽어보는 전망대로 산과 계곡을 주름 잡는다.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북녘 땅을 뒤로하고, 달려가는 남쪽의 주능선이 정답게 손짓한다.

 

하오현(760m)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내리막길은 군용차량의 타이어로 만든 층층계단이다. 김화읍에서 화천군 사내면으로 넘나드는 비포장 463번 도로는 산 아래로 터널이 개통된 뒤로는 오가는 사람도 없이 산 꾼이나 약초꾼들이 찾는 한적한 곳이다. 또 다시 급경사를 이루는 비알 길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선 헬기장은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힘든 고행 끝에 올라선 회목봉(1,025m)은 좌대도 없이 ‘건설부 1977’ 삼각점이 설치된 1025.8봉. 나무둥치에 매달린 비닐표지로 회목봉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밧줄이 걸려있는 암릉 구간에서는 신경이 곤두선다. 미끄러운 벼랑길을 오르고 내리며, 한 동안 씨름을 한 후에야 바위틈을 비집고 안부로 내려선다. 헬기장에 도착하면 마루금 좌측으로 레이더 기지처럼 보이는 광덕산(1.046m)의 정상이 시야에 들어오고 우측으로 상해봉(1.024m)의 멋진 암봉이 올려다 보인다.

 

광덕고개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는 회목현(620m). 포천 시에서 세운 광덕산 기상 레이더 관측소 안내간판이 서있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왕사토의 가파른 비알길이고, 따사로운 봄날 오후 타박타박 걷는 발길이 마냥 느려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상해봉(1.024m) 갈림길에 도착하면 화천군 사내면과 철원군 근남면, 서면의 경계지점이 된다. 서북쪽으로 비껴있는 상해봉은 포근한 육산 가운데 우뚝 솟은 암봉으로 백만 불짜리 노송 한그루가 정수리의 바위틈에 자리 잡고 있으니 아름다운 절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맥 길에 오른 보람을 만끽하게 된다.

 

3개면이 접경을 이루는 갈림길로 되돌아와, 완만한 임도를 따라 남쪽으로 40여 분간 진행하면 실질적인 광덕산의 정상인 기상관측소 정문에 이른다. 하얀 돔의 기상관측소는 정맥을 이어가는 길잡이가 되어 수십km 떨어진 곳에서도 보이는 특색 있는 건물이다. 건너다보이는 봉우리는 강원도 화천군(사내면), 철원군(서면)과 경기도 포천시(동면)를 가르는 광덕산(1.046m) 정상으로 삼각점과 엉성하기 짝이 없는 표지판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하는 주능선은 명성산(921.7m), 관음산(733.0m), 보장산(555m)을 넘어 포천시 창수면 영평천에 이르는 52.2km의 산줄기를 명성지맥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정맥은 왼쪽의 능선을 따라 도마치 봉까지 도계를 따르게 되며 고도 약 400m를 낮추면서 내려가야 하는 광덕현까지의 길이 조심스럽고 백운계곡을 넘어 사창리로 오가는 차량들의 경적음 소리에 제1구간도 마감을 한다.

 

         

             제 2 구간 광덕고개(664m) - 도성고개(630m) 16.4km

 

제2구간의 출발지점인 광덕고개(일명 캬라멜 고개)는 강원도와 경기도의 접경지역으로 (372번 지방도로) 지금도 노련한 기사가 아니면 오르기 어려운 곳이다. 그 옛날 6.25 전쟁시절 비포장의 위험한 도로에서 미군 장교가 운전병에게 캬라멜을 먹이며 졸음을 쫒았다는 설화로 한동안 캬라멜 고개로 부르던 험준한 길이다.

 

고개 마루에는 강원도에서 세운 곰의 형상이 자리를 지키고, 그 옛날 보부상들이 고개 마루에 장터를 개설하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토산품 판매점과 음식점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너른 광장의 남쪽 절개지에 걸려있는 철 계단을 타고 오르며 종주가 시작된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한 바탕 비지땀을 흘린 뒤에야 광덕산이 잘 보이는 무명 봉에 올라서서 한 숨을 돌린다. 운치 있는 노송들이 하늘을 가리는 완만한 능선을 부지런히 걷다보면 670봉이다. 널찍한 등산로에 300m마다 설치된 이정표가 마음의 등불이 되어 편안하게 바위 길 을 올라서면 870봉 삼거리에 이른다.

 

후줄근하게 땀을 흘린 산객들이 쉬어가는 정수리는 전망이 일품이다. 남쪽으로 백운산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지나온 광덕산과 박달봉(799m)의 험준한 산세가 힘차게 맥박을 이어간다. 870봉 삼거리에서 좌측(동쪽)으로 무학봉이 대정맥에서 비껴 나있지만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오. 급경사 내리막길은 三冬이 다 가도록, 찾아가는 사람이 없어, 수북이 쌓인 낙엽 속에 석편들이 즐비하다. 조심조심 내려딛는 발걸음에 오금이 저려오고, 가까스로 내려선 안부에는 바람도 잠을 자는 조용한 천국이라.

 

운무도 산자락을 타고 넘어 시원하게 조망이 열리고, 기암괴석의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서면 학이 창공을 박차고 오르는 형상의 무학봉에 이른다. 너른 암반에는 아담한 낙락장송 한그루 독야청청하니 시원하게 펼쳐지는 절경에 가슴속이 후련하다.

 

되돌아온 870봉에서 남쪽 급사면을 내려서서 완만하게 능선을 올라가면 바위틈에 로프가 걸려있고, 봉우리 하나를 넘어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널찍한 헬기장이 있는 백운산(904m) 정상이다. 삼각점과 이정표가 있는 광장은 사방을 둘러봐도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장관을 이룬다. 북쪽으로 한북정맥의 줄기 따라 복주산(1,152m), 회목봉(1,025m), 상해봉(1,024m), 광덕산(1,046m)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 국망봉(1.168m), 명지산(1,252m), 석룡산(1.147m), 화악산(1.468m), 응봉(1.436m)등 경기제일의 고봉들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정상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 비슷비슷한 봉우리를 지나면 삼각봉(910m)이고, 로프를 잡고 급경사를 내려섰다 완만한 능선을 올라서면 헬기장이 있는 도마치봉(937m)에 이른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두가 높은 산들로 병풍을 이루지만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가슴속이 후련하다. 자연그대로 때 묻지 않은 정수리에서 서쪽으로 흥룡봉(774m)의 암릉 길에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동쪽으로 건너편의 번암산(832m)이 지척이지만 그곳을 찾아가는 데는 10km가 넘으니 험준한 계곡과 아름다운 절경에 매료된다.

 

남쪽으로 6분정도 내려가면 옹달샘을 만난다. 시원한 물맛으로 갈증을 풀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어느 쪽으로 가든지 잠시 후에는 다시 만난다. 갈림길에서 완만한 능선을 지나 깔딱 고개를 치고 오르면 도마봉(883m)의 표지석이 선명한 헬기장에 닿는다. 3개 군의 분수령(포천시, 가평군, 화천군)인 도마봉(883m)은 화악지맥의 분기점이기도하다. 광덕산에서 내려온 정맥이 국망봉(1.168m)으로 향하면서 왼쪽으로 큰 지맥을 형성하고 있으니 석룡산(1.147m), 화악산(1.468m), 북배산(867m), 보납산(330m)을 지나 가평군 가평읍 가평천으로 이어지는 44.5km의 산줄기를 이룬다.

 

여기서 정맥은 폭 7~8m 정도의 널찍한 방화선을 따라 국망봉으로 향한다. 도마봉에서 급경사 길을 내려가면 비교적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20여분 후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조금 올라가면 아담한 바위틈에 소나무 한그루, 인기척에 놀란 산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지친 몸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잠시 후에 삼각점이 있는 824봉에 오르면 북쪽으로 지나온 백운봉과 도마치봉의 파노라마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완만한 능선 길로 한동안 올라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무명봉을 좌측으로 우회해서 올라가면 신로봉의 아름다운 암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끝자락에 가리산의 정상이 우뚝 솟아있다.

 

신로봉 아래 분지에는 119표지판이 있는데 "새길령"이라는 표시가 있어 음미해 보면 한글로 풀어 쓴 것이지만 新路嶺이라 부르는 것이 나을 듯싶다. 신로봉(999m) 정상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가리산(774m)으로 이어지는 기암절벽이 동양화의 진수를 보는 듯,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들이 앉은뱅이 작은 키에 옹골찬 모습으로 장관을 이룬다. 삼각봉을 지나면 헬기장이 나오고 잠시 후에 이동의 장암저수지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난다. 종주에 자신이 없다면 이곳에서 탈출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20분정도 올라가면 "헬기장이 있는 1.102봉에 이르고 이곳 또한 전망이 매우 좋다. 동쪽으로 석룡산에서 화악산으로 이어지는 화악지맥이 경기 제일의 산세를 자랑하고, 서쪽으로 이동면의 너른 들판과 장암저수지 너머로 사향산(665m), 관음산(733m), 불무산(668m)으로 이어지는 명성지맥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완만한 길을 쉬엄쉬엄 올라가면 위험 표지판이 나오고 오르락내리락 모처럼 망중한을 즐기며 20분정도 올라가면 다시 헬기장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국망봉 정상이 지척이다.

 

가파른 비알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코에서 단내가 나도록 거친 숨을 몰아쉰 뒤에야, 정상 직전에 있는 갈림길에 올라선다. 우측의 장암저수지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만나는 벼랑길에는 굵은 로프가 걸려있다. 또 한 번 비지땀을 흘린 뒤에야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국망봉(1.168m)정상에 올라선다. 경기 제3봉으로 한북정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四方 수 백리의 산하가 한눈에 펼쳐지는 조망으로 千辛萬苦 끝에 올라온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도 궁예의 전설이 서려있으니, 왕건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왕건에게 패하고 나라를 잃은 후 도읍이었던 철원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의 격전지로 적목리의 골짜기 마다 이름 없는 원혼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으니 눈시울이 뜨거울 뿐이다.

 

정상에서 5분 정도 내려갔다가 올라서면 산불무인카메라가 있는 1.150봉 삼거리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정맥은 방화선으로 조성이 되어,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이 좋아 지루한줄 모른다. 완만한 길로 20여분을 진행하면 이동면 휴양림 정문 옆에 있는 생수공장 앞에서 남동 능을 타고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1.130봉이다. 삼거리 남쪽에 있는 헬기장에 오르면 전망이 좋아 견치봉(1.110m)과 민둥산(1,023m), 청계산(849m)으로 이어지는 마루 금 끝자락에 운악산(936m)까지 아련히 보인다. 큰 무리 없이 봉우리 3개를 넘으면 넓은 공터에 이정표가 있는 개이빨산(견치봉) 정상이다.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 에서 한북정맥의 마루 금이 지나는 동쪽을 올려다보면 뾰족뾰족한 암봉이 마치 개 이빨 같이 날카롭게 보인다 하여 개 이빨 산 또는 견치봉 이라고 부른다. 견치봉의 암릉을 우회해서 내려가면 주위를 바라보는 경치 또한 절경으로 가파른 비알 길을 올라가면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있는 민둥산(1,023m)이다. 정상 주변으로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민둥산 또는 민드기 봉이라고 부르고 도성고개 까지 무성한 억새밭의 방화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2구간을 마감하는 도성고개에 도착하면 동쪽의 논남기 쪽으로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서쪽의 포천시 이동면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군부대가 가로막고 있으니 구담사가 있는 연곡리 쪽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제 3 구간 도성고개(630m) - 노채고개(370m) 12.5km

도성고개를 오르는 들머리는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의 제비울 상회 앞에서 시작된다. 군부대와 구담사를 지나면 불땅 계곡 표지석이 나오고 인적도 없는 호젓한 수례 길을 따라 한동안 오르면 도성고개 갈림길이다. 잠시 후 도성고개에 도착하며 진입로 2.4km의 워밍업을 마치고 정맥의 종주가 시작된다. 방화선을 따라 진행하는 가파른 오르막에서 심호흡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20여 분간 가쁜 숨을 몰아쉬면 백호봉(815m)에 올라서고, 잠시 후 채석장 갈림길을 지나 300여m를 진행하면 강씨봉(830m) 정상에 도착한다.

 

강씨 봉은 경기도 가평군과 포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주위에 높은 산들이 많다보니 뒷동산에 올라온 듯 낮아 보이지만 헬기장을 겸한 너른 공터에는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고 철원에 도읍을 정한 뒤 나라의 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날로 폭정이 심해진다. 이를 보다 못한 부인 강씨가 한사코 궁예에게 간언을 했으나 이를 듣지 않고 오히려 부인을 강씨봉 아래 마을로 귀양을 보낸다. 그 후 왕건에 패한 궁예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부인을 찾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 후 이곳을 강씨봉이라 부르며, 산 아래는 지금도 강씨 마을이 있다.

 

완만한 주능선을 따라 한나무봉(768m)을 지나면 오뚜기 고개에 이른다. 높다랗게 탑처럼 세워진 오뚜기령 비석이 있는 임도는 포천시 일동면 화대리에서 가평군 북면 적목리를 오가는 비포장 군사용 도로이다. 이곳은 80년대 초 오뚜기 부대에서 길을 낸 뒤로 오뚜기 고개로 부르고 있다. 가파른 방화선을 오르고 내리기를 1시간여, 따사로운 햇살아래 비수와도 같이 날카로운 억새에 시달리며 올라선 곳이 890봉의 귀목봉(1.036m) 갈림길이다.

 

가평군 북면과 하면 포천시 일동면의 삼개면 경계봉이다. 生態系 保全地域이란 표지목이 있고, 좌측으로(동쪽) 면 경계를 따라 귀목봉(1.036m)을 지나 명지산(1.252m, 1.9km 벗어나 있음), 연인산(1.068m), 대금산(706m), 마산(181m)을 지나 가평군 외서면 조종천으로 이어지는 41.6km의 산줄기를 명지지맥이라 하고 북한강에 합류한다.

 

남서쪽으로 2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뾰족하게 보이는 청계산. 어디서나 쉽게 식별 할 수 있는 산이라 목표물을 잊어버릴 염려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산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청계산과 백운산은 자연과 연관된 이름이고, 옥녀봉은 인간과의 관계, 비로봉과 연화봉은 불교의 성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천왕봉과 제왕봉은 임금님을 호칭하는 웅장하고 신성한 곳에 정해진다.

 

이제 청계산도 점점 가까이 보인다. 정상을 500m 남겨두고 우측의 큰골계곡 쪽으로 하산길이 있는 갈림길을 지나며, 표고 800내외의 호젓한 능선에는 주변의 잡목을 제거한 방화선을 따라 주위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서쪽으로 일동면 소재지인 기산리에는 유명한 유황온천지구가 있어 수도권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시설이 다르기는 하지만 황토, 맥반석, 옥 등 한국 특유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사우나, 한증막, 탕, 실내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유리 천장 아래서 일광욕을 할 수 있는 대 욕장을 갖춘 업소도 있으니 따끈한 탕속에 들어가 땀에 찌든 몸을 녹여주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좁은 공터에는 아담한 표지석과 일동 303번으로 2006에 재설된 삼각점이 있는 정상(849m). 원래 청계산은 '푸른 닭' 이라는 의미로 靑鷄山 이라 부르던 것이 지금은 '맑은 시내' 라는 뜻인 淸溪山으로 잘못 불리고 있다는 안내판과 돌무더기가 있는 정상은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으로 가슴속이 후련하다. 남쪽으로 길매봉(735m)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한 암릉으로 연결된 모습이고, 그 너머로 운악산(945m)의 거대한 암봉이 장관을 이룬다. 동쪽으로는 명지지맥과 화악지맥이 경기 제일의 고산준령을 품에 안고 힘찬 맥박을 이어 간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가파른 비알 길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청계저수지 하산길이 나온다. 전망이 트이는 벼랑 끝.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잔 봉에서 밧줄로 막아놓은 수직단애를 피해, 우측으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절벽처럼 가파른 비알 길을 밧줄과 철 계단에 의지하여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길마재(612m)갈림길이다. 일동의 기산리와 가평의 장재울을 오가는 이곳은,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얹는 안장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거리 오른쪽으로 하산 로는 청계저수지로 내려서는 길이고 앞쪽 길매봉 오르는 암릉이 장벽처럼 막아선다.

 

수 십 길 단애위에 우뚝 솟은 길매봉. 양쪽이 수십 길 벼랑을 이룬 절벽이라 여간한 강심장이라도 서늘하게 가슴이 조여 온다. 칼등같이 좁은 길을 엉금엉금 기어가며, 한 순간만 방심해도 황천길이 예 아닌가? 지나온 청계산과 주변경관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암릉 길.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함도 간담이 서늘한 벼랑길을 넘어 왔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서 가장 행복한 휴식으로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20 여m를 진행하면 미끄러운 마사토에 풀 한 포기 없는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유난히도 돋보이는 운악산의 전경이 펼쳐진다. 사바세계의 모든 번뇌(煩惱)를 해탈(解脫)하고 성불이 된 고승대덕의 인자한 모습을 대하며, 사마(四魔 -온마(蘊魔), 번뇌마(煩惱魔), 사마(死魔), 천마(天麻))와 오탁(五濁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오염(汚染)속에 살아온 내 자신이 참선하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710 암봉에서 좌측으로 돌자갈이 깔린 급경사를 내려서서 510봉의 좌측으로 돌아가면, 자동차의 경적소리도 간간이 들려오고 솔푸더기를 헤치며 절개지를 내려서면 아스팔트로 포장을 한 노채 고개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3구간을 마감하는데, 원래 노채고개는 원통산 너머에 있지만 일명 일동고개인 이곳을 신 노채고개라 한다. 이곳 일동고개는 일동면 소재지인 기산리와 가평군 하면 소재지인 현리를 연결하는 387번 지방도로이다. 우측으로는 청계저수지와 필로스, 일동레이크 골프장이 자리 잡고 있다.

출처 : 풍운아
글쓴이 : 풍운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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