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백두대간

[스크랩] 한북정맥 : 3 부

트둥 너굴 2009. 10. 1. 15:41

 

               제 7구간 울대고개 - 솔 고개 / 15.5 km

 

세상사 모든 일이 뜻대로 될 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랴 ? 산을 찾는 건각들의 바램 이 있다면 장대한 태산준령과 마루 금을 한없이 걸어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새로운 루트를 찾아 나선다. 지리산의 웅석봉에서 시작하여 인월의 덕두산까지 80여 km에 이르는 장대한 산맥을 태극능선이라 부른다.

 

3구간으로 나누어 종주하는 아이템이다. 인월에서 성삼재 구간과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구간은 완주를 하였고 이번에 추성리에서 시작하여 왕등재를 거쳐 산청의 경호강까지 15시간이라는 만만치 않은 구간에 도전을 한다. 10여일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산악회의 사정으로 일정이 취소되고 보니 허망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생각다 못해 한북정맥의 도봉산 카드를 빼어드는 수밖에....... 사실 이 구간은 집근처에 있는 곳이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달려갈 수 있는 곳이다. 해서 주머니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써 먹으려는 비상금인데, 아깝지만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안성맞춤이라 새벽바람 맞으며 울대 고개로 달려간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임박 한 탓에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어두운 장막도 동녘에서 밝아오는 여명에 밀려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만다.

 

검은 굴뚝이 있는 옹벽으로 올라서면 잠귀 밝은 개들의 합창으로 고요하던 산마루가 한동안 시끄러운 난장판이 되고 서둘러 방카를 돌아 오솔길을 찾아든다. 녹양동 36번 철탑을 지나며 의정부시와 양주시 장흥면 경계능선을 따라 진행된다. 이후 좌측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강북구, 고양시 덕양구로 바뀌지만 우측은 노고산을 지난 343봉 부근까지 계속해서 양주시 장흥면 땅이다. 숲속을 헤치며 나아가는 발걸음이 싱그러운 새벽 공기에 경쾌하지만, 아침이슬 맺힌 거미줄의 덫에 걸려 얼굴이 엉망이 되고 만다.

 

화생방 교육장인 360봉에 올라서면 울대고개를 넘는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를 문다. 양주시 장흥면 송추와 의정부시를 넘나드는 39번 국도와 나란히 교외선이 지나고 서울시 외곽 순환고속도로의 공사가 한창이다. 머리위로는 사패산의 암 봉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능선과 계곡을 따르면 안골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난다. 가능동 사람들이 아침마다 올라오는 산책로는 고속도로보다도 널찍하고, 나무계단의 층계를 따라 송이버섯(일명 샌드위치 바위)바위를 지나면 사패산(562m)정상이다. 

 

조선의 14대임금인 선조가 여섯째 딸 정휘옹주를 유정랑에게 시집보내며 하사하여 사패 산이라고 한다. 너른 암반이 깔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천하제일의 전망대는 쾌청한 날씨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도봉산의 불꽃같은 암봉 들이 하늘높이 솟아오르고 오봉의 화려함에 눈이 부시다. 수락산과 불곡산을 안고 있는 분지 안으로 의정부 시가지가 빌딩숲을 이루고, 북녘으로는 지난번 걸어온 임꺽정봉, 오산삼거리, 호명산, 한강봉, 챌봉이 천주교 묘지를 지나 이곳까지 연결된다.

 

정상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이른 새벽에 부지런한 사람들도 많다는 생각으로 인사를 나누고 보니 밤새 달려온 부산갈매기들의 도봉산 원정 산행이다. 산사람들의 깊은 우정이 각별해서, 금 새 친숙해지고 초행길인 그들에게 길안내를 자처하며 내딛는 발걸음에 신바람이 난다. 잠시 후 회룡 골재를 통과하여 가파른 비알 길을 거슬러 오르면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의 분기점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49봉이다.

 

매일 보는 우리도 포대능선과 선인봉, 백옥 같은 오봉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데, 부산갈매기들이야 오죽할까? 천하절경의 화려한 모습에 매료되어 환호성으로 자리를 뜰 줄 모른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도봉동에서 의정부 쪽으로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스모그 현상을 이루고 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공간 속에서 우리들의 심장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아기자기한 포대능선의 암 봉을 넘나들며 날렵하게 생긴 바위에 올라 친절한 가이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수년전 금정산에서 받은 그들의 친절함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게 되어 마음이 홀가분하다. 자운봉(740m)이 지척에 보이는 벙커가 있는 716.7봉에 올라서면 의정부시와 도봉동이 경계를 이루는 다락능선과 천년고찰 망월사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물 한 모금으로 휴식을 끝내고 서둘러 도봉능선이 시작되는 신선대의 쎄미 클라이밍 계곡으로 내려선다.

 

집 가까이 있는 도봉산은 아침 먹고 천천히 시작해도 될 터이지만, 지금 통과하는 이곳은 휴일 날 10시만 넘으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어 고속도로의 정체구간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넉넉잡아 10여분의 거리를 2 - 3시간씩 지체를 하게 되고 종주산행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쇠말뚝을 타고 오르는 부산갈매기들 도봉산의 진수를 만끽하며, 오금이 저려오는 암봉 위에서 사진도 한 장 찍어보고, 신선대 정상에서 사자후를 토해낸다.

 

신선놀음에는 막걸리가 제일인기라. 널찍한 암반위에 자리를 잡고 먹 거리 풀어헤친 진수성찬에 서울의 산 꾼이 부산 갈매기들에게 주는 정표인기라. 자 한잔 받으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30여분이 꿈결같이 지나도 아쉬움만 남는다. 오봉갈림길에서 아쉬운 작별을 한다. 오봉까지 다녀오는 그들을 끝까지 안내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한북정맥의 종주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에. 부산갈매기 잘들 가이소. 

 

도봉 주능선이 끝나고 우이남 능선이 시작되는 분기점이 우이령으로 내려가는 정맥 길이고 좌측으로는 우이 암으로 향하는 길이다. 도봉구와 강북구 경계인 이곳에서 우이령으로 하산하다 군부대의 경비병과 실랑이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마루 금에 걸려있는 암초들이 성가신 존재들이지만, 국가를 보위하는 중요한 시설들이 밀집되어있는 군부대는 민간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 우이동까지 내려가서 육모정 고개로 진입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보문 산장으로 진로를 정하고 만다.

 

정상 코스보다 많이 길어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달려가는 발걸음은 지칠 줄 모르고, 10시 정각 우이동 그린파크 앞의 너른 광장에 도착한다. 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제2라운드의 산행준비로 간식을 들며 배낭을 꾸리고 산행계획서를 다시 한 번 점검한다. 우이동 종점에서 장흥면으로 넘어가는 도로는 70년 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왕래하던 곳이다. 하지만 69년 김 신조의 사건이 있은 뒤로 수도 서울의 안전을 위해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육모정 매표소는 우이령 쪽으로 10여분 거리에 있는데 두 갈래 길 중에 우측은 군인들이 통제하는 곳이라 접근이 불가능하고 왼쪽의 고급요정들이 자리 잡고 있는 소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선다. 그 많던 인파들이 간곳이 없고 조용한 산책로에 계곡 물소리만이 정적을 깨트린다. 이상한 예감이 들지만 별일이야 있으랴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매표소 앞에 도착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휴식년제로 통행이 불가능하니 돌아가라는 한마디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만다.

 

아무리 사정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고 되돌아오는 발길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허탈감이 앞선다. 만리장성보다도 견고한 철조망이 원망스러워 혹시나 개구멍이라도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는데 산기슭으로 희미한 오솔길이 보인다. 앞뒤 가릴 것도 없이 순간적으로 2m가넘는 철조망을 넘고 만다. 물 찬 제비처럼 계곡 속으로 파고들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위험지역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바위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잠시 휴식을 하며 생각을 해봐도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무성한 숲속에는 패이고 찢어진 상처가 아물고, 20여 년 동안 인간의 발자취가 미치지 못하는 동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장군봉 능선, 오수를 즐기던 산 까치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난초지초 흐드러진 화원에는 산새들이 지저귀는 심산유곡으로 변하여, 바위에도 새로운 이끼가 돋아나고 쓰러진 고목위로 버섯들이 자생하는 별천지가 펼쳐지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숲속으로 파고든다. 바람 한 점 없이 후덥지근한 열탕 속에서 길도 없는 가시덤불을 헤치며 아슬아슬한 암릉 길을 돌아간다. 지친 몸에 다급해지는 마음으로 무작정 능선으로 향하지만 마음대로 진행이 되지를 않는다. 1시간동안의 사투 끝에 올라선 주능선은 영봉과 육모정고개의 중간지점인 코끼리바위가 있는 장군봉이다. 인수봉과 백운대의 숨겨진 뒷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억눌렸던 가슴이 툭 터진다.

 

아침에 지나온 도봉산의 연봉들과 오봉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가 있고, 상장봉 능선들이 바람막이 울타리가 되어 정맥의 마루 금을 이루고 있다. 일단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으로 소나무 그늘에서 마시는 동동주는 세상의 그 어느 술보다도 감칠맛이 나고 안주삼아 먹는 김밥 또한 꿀맛이다. 30여 분간 느긋한 휴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육모정 고개에 도착하면 솔 고개 쪽에서 올라온 등산객으로 제법활기가 넘친다. 고독과 외로움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인사를 나누고 “산을 사랑하다 산으로 돌아간 ”어느 시인을 추모하는 이은상님의 노래비가 오가는 길손들에게 새로운 감명을 준다.

 

육모정고개를 뒤로하고 오르는 무명봉은 날카로운 암봉이다. 아슬아슬한 암장을 돌아갈 때는 모골이 송연하지만, 시원한 조망으로 절경을 이룬다. 드디어 우이암 에서 연결되는 정맥의 갈림길에 올라선다. 직선으로는 1.5km에 불과한 짧은 거리지만 장애물을 피해 돌아 나오는 길이 이다지도 멀고 험난할 줄이야. 마주친 산 꾼들로부터 철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그래도 해냈다는 자부심에 긍지를 느낀다. 도봉산은 정맥의 주봉이지만 아쉽게도 북한산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영봉, 만경대, 문수봉 , 향로봉을 지나는 지맥으로 빗겨 나있다.

 

민 대머리 상장봉(543m)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아슬아슬한 슬랩 지대가 있어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이곳의 조망은 천의 얼굴을 가진 인수봉의 뒷모습과 숨은 벽의 날카로운 암 봉 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하루재의 휴식년제가 해제된다면 북한산 종주의 새로운 루트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솔 고개로 내려오는 하산 길에는 여러 곳에 아름다운 전망대가 있어 북한산과 도봉산, 오봉과 건너편의 노고산(495m)을 바라본다. 울창한 숲속의 정상에는 군부대가 자리 잡고,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사면 길에는 철조망이 겹겹이 장벽을 이루고 있다. 제대로 마루 금을 밟지 못하면서 종주를 고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회의적인 생각에, 수많은 산 꾼들이 도봉산에서 한북정맥의 종주를 접게 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아쉬운 마음이지만 솔 고개에서 나의 종주도 접어야 할까보다.

 

                   제 8 구간 솔 고개 - 3 9 번국도 /17km

 

상장봉(543m)을 넘어 솔 고개에서 한북정맥을 접 은지 4년 만에 다시 나서는 것은 나머지 2구간이 못내 아쉬워 군부대가 가로막고, 무수한 장애물이 앞을 가려도, 정맥의 끝자락을 확인하지 않고는 가슴속에 찜찜한 응어리로 남아있기에. 大寒을 앞세우고 찾아온 강추위가 한결 누그러진 이른 아침(영하 8도) 곤하게 잠든 아내를 깨워 솔 고개까지 편하게 이동을 한다.

 

솔 고개는 양주시 장흥면과 고양시 효자동의 경계지점이다. 312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정맥은 군부대가 떡 버티고 있다. 처음부터 장벽 앞에서 진입로 찾기에 골몰하며 산세를 바라보지만 철조망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땡감 씹은 얼굴로 右往左往(우왕좌왕)하던 끝에 의정부 쪽으로 부대의 철조망이 끝나는 골목길에는 한진 농원이 반겨주고,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면 이방인을 경계하는 견공들의 합창으로 단 잠속에 빠진 마을이 한동안 소란스럽다.

 

심요동 마을의 산 모 랭이 전신주에 리본이 바람결에 나부끼고, 절개지를 올라서면 철조망이 산 중허리를 가로 지르며 돼지 몰이하듯, 송추 쪽으로 진입로가 밀려난다. 하지만 뒤돌아보는 상장봉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319봉에 올라선 뒤에야, 송추 쪽으로 향하던 철조망이 반원을 그리며 노고산 쪽으로 돌아선다.

 

남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10여 분간 진행하면 철조망 밖으로 참호가 있고 좌측의 절개지를 내려서면 콘크리트길이 나온다. 군 장병들이 청룡사로 다니는 진입로인 듯 부대에서 나온 길이 계곡이 있는 우측으로 청룡사 팻말이 보인다.

 

절개지를 치고 올라 철조망을 따라 진행을 하면 노송의 그늘아래 쉼터가 나오고 끈질기게 따라오던 철조망도 좌측으로 꼬리를 감춘다. 군부대가 없었다면 솔 고개에서 시작하는 정맥이 이곳으로 연결이 될 것인데. 덕분에 1시간이상 철조망과 씨름을 하며 진땀을 흘린 후에야 마루금을 만나고 잠시 후에 정상으로 오르는 비상도로를 따른다.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방카들이 산의 정수리마다 진을 치고 민간인들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아도 조국의 산하를 누비는 산 꾼들의 집념을 어찌 막을 수 있는가? 도봉산과 상장봉, 북한산의 화려한 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시멘트 길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면서도 눈길은 연신 북한산의 숨은 벽 쪽으로 향한다.

 

정상이 가까워 오며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견의 울부짖음에 주눅이 들어 좌측의 벼랑아래 가시덤불 이 엉켜있는 방공호를 따라 부대를 통과하며 지은 죄도 없으면서 오금이 저려온다. 부대의 철조망을 벗어나면 전망 좋은 헬기장이 반겨준다. 북한산의 뒷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전망대. 너무도 아름다움에 취해 자리를 뜰 줄 모른다.

 

노고산(487.0m)정상을 뒤로하고 정맥의 마루 금을 따라 남쪽으로 진행하면 반가운 이정표가 자리를 잡고 나뭇가지 사이로 리본들이 손짓을 한다. 망가진 좌대의 삼각점이 박힌 340봉. 축석고개의 287봉부터 동행한 양주시와 작별을 하고 고양시 덕양구 땅으로 들어선다. 8번 철탑아래 이정표에서 삼막골 방향으로 진행을 하고, 다음 이정표에서는 사격장이 있는 경내를 통과하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9번 철탑을 통과 한 후, 수색 정찰요령 간판이 있는 정수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돌무덤이 있는 사거리로 내려선다.

 

남쪽을 바라보며 옥녀봉(212m)정수리에 올라서면 군부대의 초병이 근무 중이고 산행 중에 처음으로 산객(강시범 님)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서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급경사를 내려서면 우측으로 널따란 등산로가 이어진다. 가파른 무명봉에 올라서면 전망 좋은 헬기장이 반겨주고 삼각산의 자태가 아련히 멀어만 간다. 빙판의 절개지 아래는 장흥면 삼하리와 고양시 지축동을 오가는 매내미 고개로 349번 지방 도로이다. 건너편의 삼오 조경 간판을 바라보며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종주 길의 리본들이 반색을 한다.

 

이후 임도인지 아니면 주민들의 산책로인지 널찍한 길을 따르게 되는데 삼송역까지 2.7km의 산책로엔 등산로 안내 팻말이 두 곳, 쉴 수 있는 정자가 셋 그리고 운동시설과 휴식공간으로 마을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삼림욕장이 펼쳐진다. 이층의 정자를 지나며 삼송역 방향의 이정표와 작별을 하고 잡목이 무성한 마루 금을 따라 포장된 도로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서면 1번국도가 지나는 숫돌고개에 이른다.

 

마루 금에는 군부대의 정문이 가로막고 좌측의 철조망을 따라 고양 중학교 뒷담을 바라보며 야산으로 접근하여 작은 암자 육 화사를 찾아가는 미로는 어릴 적 숨바꼭질하던 달동네 토담 골목에 이른다. 좌로 우로 방향을 바꾸며 찾아가는 미로에는 소슬 대문 모서리에 리본이 나부끼고 텃세 부리는 견공들의 울부짖음에 공포를 느끼며 육 화사 채마밭을 지나치면 비로소 정맥의 마루 금으로 올라선다.

 

끈질긴 철조망이 마루 금을 뒤덮고 완만한 주능선엔 산악자전거 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소음을 내뿜는데 가벼운 인사로 제 갈 길을 찾아간다. 삼각점이 있는 무 명봉을 지나 무풍지대 스치는 속도로 달려가면 빈번하게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우측 방향으로 13번 고압 전신주도 지나고 농협대학의 울창한 조림지를 만난다.

 

우측으로 뉴 코리아 골프장엔 녹색의 그린도 눈 속에 잠이 들어 찬바람만 몰아치고, 육중한 철조망이 마루 금으로 치닫는데 정수리를 넘어서면 종 마장으로 이어진다. 좌측으로 농협대학 건물들이 솔밭 속에 자리 잡고, 원당 경주마목장 경마교육원 정문으로 내려서면, 가로수 숲길에 연인들의 속삭임이 정겹게 들려오고, 좌측의 고개 마루를 넘어서면 허브 향이 가득하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서삼릉 삼거리. 마루 금이 이어지는 주능선은 한양 골프장의 그린으로 철조망 을 곁에 두고 이어지는 363번 1차선 지방도는 군데군데 웅덩이가 패여 있다. 승용차도 비켜가기 어려운 길을 따라, 허브 랜드, 대천 낚시터, 서삼릉 보리밥집을 지나면 젓 소 개량 종축장과 보이스카웃 훈련원이 나오고 쥐 눈이 콩 마을 이정표를 따라가면 송화간판이 있는 곳에서 그린도 끝이 나고 다시 숲길로 이어진다.

 

작년 말에 개통된 수도권 외곽 고속도로에는 질주하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지하 통로를 빠져 나오면 고양시에서 의정부로 연결되는 39번 국도의 전주 민속 박물관 앞에 도착하며 6시간의 종주도 마감을 한다.

 

               제 9 구간 39번국도 - 장명산(102m) /18km

 

지난주 솔 고개에서 512 탄약 중대 까지 무사히 마루 금을 밟아오며 마지막 구간도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으로 2주 연속 도전장을 낸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섰지만 의정부역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3700번(의정부에서 인천)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터미널로 가서야 승차를 한다.

 

하지만, 기사님의 말씀에 가는 길은 맞지만 왈릉 골이나 탄약 중대 앞에서는 정차를 하지 않으니 대자리에서 800번을 갈아타야 한다는 친절한 안내로 대자리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린다. 영하 8도의 추위가 목덜미를 파고드는데 발을 동동거리며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구세주 같은 버스에 오르고 보니 잠시 후에 낙타고개를 지나며 곧바로 탄약 중대 앞이 아닌가?

 

1시간 이상이나 늦어진 시간을 보충하기위해 군부대로 진입하는 도로를 따라 종종 걸음을 친다. 10여분 후 부대정문에서 우측으로 숲길을 따르면 마을의 비닐하우스를 지나며 좌측의 등 로를 따라 부대의 철조망으로 접근을 한다. 잔설이 쌓인 절 개지를 통과하는 중에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동반자를 만나는 반가움에 악수를 하고 외로운 종주 길에 백만 원군을 만난 듯 발걸음에 활기가 넘친다.

 

부대의 후문에서 우측의 산길로 들어서면 평지나 별반 차이가 없는 숲길을 지나 좌측의 2차선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절 개지를 치고 오른다. 잠시나마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 속에 과수원 너머로 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광목장의 정문으로 표지기가 걸려있는 울타리를 경계삼아 마루 금이 이어진다. ”江陵金氏 支山君 長湍派 望鄕의 祭壇“은 고향을 이북에 두고 온 실향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곳으로 휴전선이 가깝다는 표시이기도 하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현달산(138m) 오름길이 시작된다.

 

해발 138m의 정수리는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가 있고 삼각점이 3개나 있지만 표지 석은 없고 일산의 너른 들판이 조망되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서쪽으로 가야할 고봉산(206m)이 높다란 송신탑을 머리에 이고 마주 바라보이고 북쪽으로는 낮은 구릉과 그 너머로 금촌 시내의 아파트들이 아련히 바라보인다. 10여 분간 주위를 조망하며 앞으로 진행해야할 방향을 숙의하는 등, 나 홀로 산행의 외로움에서 해방된 즐거움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정상에서 올랐던 길을 10여 m 다시 내려오면 우측“으로 마루 금이 이어지고 평지돌출형의 산세답게 가파른 벼랑길이 잠시나마 이어진다.

 

곧 이어 2차선 포장도로의 삼거리 갈림길인 문봉동재에 이르고, 도로를 건너 동국대 병원 방향으로 들어서면, 차도와 인도의 구분도 없이 건축 폐자재를 실은 덤프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를 마셔가며 타워 골프연습장을 지나 10여 분간 진행하면 좌측으로 예빛 교회가 나타나고 마루금은 우측의 숲속으로 이어진다. 부대의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진행을 하면 고봉산의 고압철탑이 점점 가까워지고, “밝은 마음, 웃는 얼굴, 활기찬 모습”의 구호가 적힌 백마사단의 예하부대 정문에 도착한다. 40여 년 전 피와 땀이 서려 있던 부대(월남 파병부대)라 감회가 새롭고 철조망을 따라 한 동안 진행을 하면 석수오리와 궁중한방 삼계탕 간판이 걸려있는 성동고개에 이른다.

 

이곳이 고봉산의 들머리가 된다. 산책 나온 주민들과 마주치며,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면 만경사에 이른다. 잠시 숨을 돌리고 100여m 를 거슬러 오르면 정상을 우회하는 갈림길에서 우측의 임도로 들어선다. 몸뚱이는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천하재물 취득자” 장승을 지나 주능선에 올라 거미줄 같이 얽혀있는 등산로에서 좌측으로 이동을 하여 좀 애매하지만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중산동 두산아파트 방향으로 내려선다. 10여 분간 진행하면 고봉산(206m)의 정수리가 시원스레 조망되는 헬기장에 이르고, 잠시 후에 군 통신 안테나가 있는 삼각점 봉에서 지근거리에 高峰亭의 팔각정이 반겨준다.

 

소나무 숲 사이로 두산아파트의 상징물이 보이고 시원스레 펼쳐지는 중산고개에 도착한다. 307번 도로의 중산고개는 일산동에서 조리면으로 오가는 4차선으로, 고개 마루에는 S K 주유소와 종주 팀들이 식사하기 좋은 순두부 집이 있다. 가지고온 간식을 먹을 곳을 찾아 길을 건너 금정굴 가는 표시목과 장승을 만난다. 절개지를 치고 올라 100여 m 진행을 하면 통한의 양민학살의 현장인 금정굴에 이르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위령탑 건립을 위한 모임의 현수막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민족의 비극인 6.25 전쟁 중에 9.28수복을 하여 점령 중이던 인민군이 물러가자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남녀노소를 비롯하여 억울한 사람들이 반공단체와 경찰에 의해 대량으로 학살된 곳이다.)

 

잔솔들이 무성한 등산로를 따라 식사하기 좋은 곳을 골라 자리를 펴고 의정부에서 온 김창수님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망중한을 즐긴다. 산행경력이야 2년차의 새내기지만 6개월 동안 100여 회의 산행으로 산의 매력에 푹 빠져 한북정맥을 단독으로 주파하는 저력을 보이고 있으니 우리 산 꾼들 세계에 커다란 거목으로 빛을 보게 될 날도 머지않으리...

 

10여 분간의 휴식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완만한 솔밭 속을 거니는 여유로움 속에 108봉 정상에 올라서면 삼각점과 함께 모진 바람 맞아가며 명당자리 고수하는 무덤3기가 반겨준다.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와 큰 마을 방향으로 소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면 돌탑 7기가 외로운 종주꾼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잠시 후 큰 마을 아파트 경내로 들어선다.

 

이제부턴 그나마 산길도 끝이 나고 일산의 도심지를 통과하는 미로를 걷게 된다. 직진을 하면 큰 마을 마트에 이르고, 왼쪽으로 정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진행을 하면 경의선 철도 위를 지나 일산 가구공단의 정문으로 들어선다. 건널목을 건너 제 1문을 통과하여 골목길로 진행을 하면 오른쪽으로 라자가구 전시장이 있고 계속 직진하면 노송가구 건물이 우리를 반겨준다. 이제 건물도 듬성듬성 서부개척시대의 황무지처럼 너른 벌판에 벌집 쑤셔 놓은 듯 택지개발이 한창이다.

 

우측으로 비포장 길을 걸어가노라면 언 땅이 녹은 진창길에서 등산화에 흙이 묻을 새라 요리조리 피해가며 골프 연습장을 지나면 좌측으로 소나무 숲이 나타나고 잠시 후 창건사에 이른다. 창건사를 뒤로하고 오른쪽으로 조금가면 뚝 방의 절개지 위로 올라선다. 앞에 보이는 너른 벌판이 그 유명한 운정택지개발 현장이다. 좌측으로 토성 비슷한 뚝 방이 활처럼 휘어있지만 자세히 보면 마루금은 건설현장의 제물이 되어 평지로 다듬어져있고, 건너편의 붉은 벽돌집 개발인력 건물 쪽으로 마루금의 흔적이 있다.

 

여기저기 붉은 깃발이 꽂혀있는 현장으로 내려서면 분주히 움직이는 덤프트럭사이를 지나 절개지로 오른다. 뚝 방에 올라서면 문화유적 발굴 현장에 이르고, 한 여름 불볕더위 속에서는 무성한 가시덤불을 헤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구 파 헤쳐진 벼랑에서 미로를 헤매듯, 경기인력 개발원 건물의 골목길로 올라서며 황무지를 벗어나 마루 금을 다시 밟게 된다. 4차선 도로에서 우측으로 인도를 따라 지루한 행진이 시작되고, 목동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무한정 도로를 따라가면 교하1차 월드 메르디앙 아파트 정문을 지나게 된다.

 

도로를 따라 진행방향으로 10여분을 더 가면 정면으로 아파트의 숲이 나타나고, 전신주에 걸려있는 보리암과 임진강 장어구이 간판을 꼭 확인해야한다. 만약 이곳에서 직진을 한다면 다 된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이 되고 만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소나무 숲이 있는 오솔길로 진행하면, 교하읍 고인돌 삼림욕장 안내도가 세워진 갈림길에 이른다. 다시 파평 윤씨 정정공파 묘지 입구의 갈림길에서, 좌측의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들꽃 어린이집이 나오고 차량들의 통행이 많은 절개지위로 올라선다.

 

좌측의 임도를 따라 100 여m 진행하여 넓은 도로 좌측의 지하도를 빠져나와 절개지 쪽의 성재암 가는 진입로를 따른다. 시원스레 질주하는 4차선도로와 고압전신주의 철탑대신 소각장의 굴뚝같이 세워진 신기한 모습을 바라보며, 절개지의 정상에 올라 왼쪽으로 사찰의 진입로를 따른다. 곧이어 자연석에 새겨진 성재암 표지석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직진하면 고인돌 삼림욕장 간판이 나오고, 파평윤씨 가족묘의 비석에서 우측으로 (좌측에는 교하 중학교)고개 길을 넘어 2차선 포장도로인 핑 고개에 이른다.

 

도로에 내려서면 버스 정류장과 유진 케미갈 안내판이 있고, 이곳에서 우측의 샛길로 진행하면, 교하읍의 공단 중에서도 성림문화사 건물이 유난히 돋보인다. 미진사의 정문에서 우측으로 고개 마루를 바라보며 좌측의 절 개지를 치고 올라 공단의 뒤 능선으로 진행하고 우측으로 흙더미를 쌓아놓은 사이로 장명산(102m)이 바라보인다.

 

장명산의 전위봉은 골재 채취로 만신창이가 되어 산더미를 이루고 분쇄기의 굉음소리와 부지런히 움직이는 덤프트럭으로 흙먼지가 일어나는 공사현장에서 장명산도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운명으로 가파른 절 개지를 이루고 있다. 좌측의 능선으로 오르면 잠시 후 열린 산악회에서 종주기념으로 소나무 가지에 걸어 놓은 ”한북정맥 완주“ 현수막이 반겨준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방공호를 겸하고 있는 정수리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곡릉천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로 오두산이 바라보인다.

 

그 먼 길을 달려오며 오매불망 그려오던 장명산. 100여 m의 낮은 곳이지만 파주 문산의 곡창지대를 아우르는 파수꾼이요, 정맥의 꼭지 점이다. 울대고개에서 시작하는 곡릉천의 물길을 피해 남쪽으로 도봉산과 상장봉, 노고산의 군부대를 거쳐 옥녀봉에서 삼송리로, 현달산(138m)을 지나 고봉산(206m)으로 고양시와 파주시를 누비는 한북 정맥의 줄기는 영원토록 나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리.

 

한북정맥의 백미는 타종식이 아닌가? 쇠망치 높이 들어 내려치는 종소리는 멀리멀리 한북정맥의 마루금 따라 수피령까지 울려 퍼진다. 곡릉천의 강물에 손을 담그지는 못했지만 출발은 달라도 졸업을 함께한 인연으로 금촌의 족발 집에서 쫑파티를 하며 준족을 자랑하는 대전의 김태식 님(호는 무학이요. 닉네임이 통영마루로 홀대모의 회원)과 의정부의 김창수님과 술잔을 높이 들며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은 없지만 우리의 산하를 마음껏 누비며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출처 : 풍운아
글쓴이 : 풍운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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