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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북정맥 .4 부 : 명성지맥

트둥 너굴 2009. 10. 1. 15:41

 

                         지맥 가는 길

한북정맥에는 명성지맥, 화악지맥, 명지지맥, 천마지맥(축령지맥), 수락지맥, 왕방지맥, 감악지맥, 오두지맥 등 8개의 지맥이 분기하고 있어, 경기도 일원의 산자락을 형성하고 있으니 이 또한 정맥의 버금가는 산줄기로 그 지맥의 산자락을 더듬어 보고자한다.

                         

                           명성지맥 - 52.2km

                제 1 구간 광덕산(1,046m) - 여우고개(520m) / 21.9km

명성지맥은 남으로 영평 천과 북쪽으로 한탄강을 품에 안고, 뻗어 내리는 지맥으로 52km의 긴 여정이 펼쳐진다. 광덕 고개에서 2.5km의 급사면을 치고 오르면 강원도와 경기도를 가르는 도계이자, 강원도 화천군(사내면)과 철원군(서면), 경기도 포천시(동면)를 가르는 광덕산(1.046m)정상으로 부터 명성지맥의 종주가 시작된다.

 

남서쪽으로 진행을 하면“갈말310, 2007년 재설”삼각점이 설치된 825봉에 오르고 박달봉(830m)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북서진하면 가파른 비알 길에는 자일도 매어있고 엉성한 나무사다리가 암릉길에 구세주가 된다. 10여분 후 군 작전도로가 나타나고 서쪽 숲 능선으로 내려선다. 잣나무 숲을 따라 내려가면 S K서면기지국 시설물을 만나고, 강원도 철원군 서면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의 경계를 이루는 47번 지방도로인 자등현에 이른다.

 

들머리는 주차장 서쪽의 잣나무 숲속으로 이어지고 작전도로가 나타난다. 잠시 후 넓은 길을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서면 참나무 아래로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고, 교통호를 따라서 서쪽으로 내려서면 군부대장의 경고문이 눈길을 끈다. 참나무와 낙엽송이 공존하는 울창한 능선에는 야전군의 진지들이 요새를 이루고 있다. 가파른 비알 길을 30여 분간 진행하면 전위봉에 오르고 잠시 후 정상석이 있는 각흘봉(828m)에 올라선다.

 

스텐으로 만든 정상석과 “갈말 311, 2007년 재설”된 삼각점이 있는 정수리는 비좁은 암봉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과 군부대에서 방화선을 조성하여 사방의 능선들이 손금 들여다보듯 막힘이 없다. 북쪽으로는 대득봉(630m)까지 뻗은 능선의 왼쪽으로 용화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뾰족한 상해봉을 따라 하얀 돔의 기상관측소 시설물과 광덕산 정상, 그 남쪽으로 이어가는 백운산(903.m)과 국망봉(1.167.2m)의 한북정맥이 장쾌하고, 특이한 형상의 가리산(6774.3m)이 눈길을 끈다.

 

약사 령 가는 길은 만리장성과 같이 등줄기가 반들거리고, 소나무가 있는 분기 봉까지는 암릉 구간으로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 속에 양쪽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등줄기에 땀을 식혀주는 휴식의 공간이다. 포사격장이 있는 안덕재 와 사향산(750m)을 바라보며 바위 길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붉은 깃대가 서있는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서 직진을 하여 소나무가 있는 분기봉에 올라, 서북쪽의 바위봉을 지나면 용화저수지로 이어지는 지능선 쪽이고, 마루금은 남쪽(왼쪽)의 울창한 숲속으로 각흘봉 일반등산로가 이어지는 662m봉 방향의 능선을 따라야 한다.

 

인근에 있는 약사봉에 얽힌 비화를 인용하면 장준하선생이 1975년 8월 17일 의문사로 57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한 곳이다. 박전대통령과 장준하 선생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한 사람은 만주 군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출발하고, 또 한 사람은 일본 신학교에서 유학 중 일본 학병으로 끌려가 탈출한 뒤 중국군 유격대에 가담하면서 독립운동가로 나선다. 나중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니 훗날 유신 개헌을 하며 장기 집권을 자행할 때, 또 다른 한 사람은 사상계의 사장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독재를 위해 싸운다. 그 뒤 이곳에서 의문사 하였다.

 

662m봉에서 각흘봉 일반 등산로를 버리고 남서쪽으로 방향이 틀어진다. 1968부대장의 경고문이 보이고 잠시 후 방향이 서쪽으로 바뀌며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암봉을 향해 오름길이 이어진다. 좌측 암봉의 절벽지대를 피해서 우측으로 돌아 오르면 넓은 공터를 이룬 암봉의 정수리 이다. 이제 약사령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낡은 참호 등, 군 시설물 들을 지나며 내리막이 이어지고, 비포장 임도인 약사령은 경기도 쪽의 외약사동과 강원도 쪽의 용화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계단 같이 가파른 오름길에서, 지친 몸을 추 수리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지친 몸에는 한 발짝도 천리 길인데, 우측 사면으로 돌아서 오르는 길이 여간 반갑지가 않다. 하늘이 열리는 헬기장에 올라서면 명성산이 정면으로 올려다 보인다.

 

남쪽으로 안덕재 사격장이 내려다보이고, 군부대에서 나무들을 모두 베어 사방으로 시야가 확 터지는 지역이 펼쳐진다. 명성산 구조 4지점에는 우측으로 용화저수지3.2km이고, 명성산은 직진으로1.7km를 가야한다. 용화저수지 골자기 갈림길은 구조5지점이다. 30여분의 고행 끝에 갈림길에 오르면, 북쪽으로 300여 m 벗어난 명성산 정상이 지척에서 반긴다. “갈말24, 1983재설”의 2등 삼각점도 있고 커다란 표지석(923m)도 있는 명성산은 “울음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신라의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며 망국의 한을 목 놓아 울자 그 슬픔에 산도 따라 울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정상 서쪽으로 뻗어 내린 암릉지대 에는“궁예의 침전”이라는 바위가 있고, 궁예의 전설은 여우봉 남쪽의“사향산”으로 이어지는“여우고개”에 어린 전설도 있다. 또한 산세는 풍수지리상으로 소(牛)가 누워있는“와우형”이라는데 뾰족한 암 봉의 정상이 소의 머리라면 북쪽의 정상에서 남쪽으로 길게 늘어진 주능선은 소의 등허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능선의 서쪽은 급한 벼랑과 바위, 암 봉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은 완만한 수 만평의 분지로 억새와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다시 삼거리(910m)로 내려와 편안한 등산로를 따라 남쪽의 능선을 따른다. 삼각봉(903m) 정상에 오르면 정상석 뒷면에 양사언의 “태산가를 적어 놓았으니”

 

태산이 비록 높다하나 이 또한 산이니

오르고 올라 그치지 아니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으리요.

사람이 몸으로 노력하지 아니하고

다만 산이 높아 오를 수 없다고 말하네.

 

한동안 평탄하고 편안한 능선을 따르니 신안고개 2km표시의 헬기장에 이르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노라면 정자0.5km의 이정표가 있다. 이곳은 명성산의 억새 축제장으로, 가을이면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무심코 내려섰다가는 마루 금에서 이탈하고 만다. 이정표에서 잠시 후 등산로 좌측으로 경기소방서의“위험” 표시와 마스크 쓴 헌병이 그려진 경고문이 서있는 철조망의 잡목 능선이 마루 금이다.

 

명성산은 산자락의 산정호수와 어우러진 운치가 뛰어나고 국민관광지로 이름 난 곳이다. 산 전체가 암릉과 암벽으로 이루어져 산세가 험준하여 남으로는 가파르고 동으로는 경사가 완만하다. 안덕재에서 내려오는 분지는 화전민들의 터전이 있던 곳으로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또한 이곳은 수려한 경관으로 이승만과 김일성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6-70년대 동계 훈련장이 없던 시절, 호수위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장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안덕재로 향하는 등산로는 포사격장이 있는 관계로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여 철조망을 따라 우회하여야 한다. 그나마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는 종주가 불가능하다. 궁예약수가 있는 억새밭을 헤치고 독도에 주의하며 등룡폭포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면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한다. 안덕재 일원은 습지로 이루어져 있어 여기저기 웅덩이들이 많고 억새와 싸리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면 제법 가파른 시멘트포장 군사도로와 만난다.

 

안부에서 부대 쪽으로 이어지는 왼쪽의 도로를 버리고 오른쪽능선 길을 따라 오른다. 잠시 후 SK송신탑을 통과하고, "H" 자가 있는 널찍한 헬기장에 오르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가슴속이 후련하고 동쪽으로 한북정맥이 마루 금을 이루고 있다. 사자 굴을 빠져 나오는 긴장감 속에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서면 일반산악회 표지기도 많고 길도 좋아 큰 어려움 없이 여우봉(620m)에 올라선다.

 

"군사보호시설" 시멘트 사각기둥과 팻말( 등룡폭포0.7km, 흔들바위 0.5km)이 있고 각흘 산악회에서 나무에 걸어놓은 앞면에 "여우봉", 뒷면에 "여인봉 정상" 이란 팻말도 보인다. 이곳에서 남쪽 억새지역으로 오르내리며 30여분을 진행하면 78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여우고개에 도착하며 제 1구간을 마감한다.

 

           제 2 구간 여우고개(520m) - 도내지고개(43국도) /12.5km

 

길옆으로 여우재 산장, 고개 마루식당 등 몇 개의 음식점과 진행 할 방향으로 "산정교회"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산정교회 오른쪽으로 오르면 깊은 산골 팬션 앞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포장길을 버리고 좌측의 사면 길로 올라서면 묵은 산판길이 연결된다. 잠시 후 리기다소나무 숲속으로 묵은 산판 길이 이어지지만 산판 길을 버리고, 무성한 잡초와 가시덤불을 헤치며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교통호들을 건너뛰며 오르게 된다.

 

10여분 후 시야가 터지는 방화선으로 오름길이 시작되고, 리기다소나무와 참나무들이 공존하는 능선에 올라서면 벙커가 있고, 뒤돌아보면 북쪽으로 여우봉 뒤로 명성산의 억새밭도 보이고, 그 우측으로 바깥덕재 포사격장과 각흘봉이 선명하다. 평탄한 바위능선을 지나 남쪽으로 향하면 머리위로 정상 쪽 군부대가 보인다. 잠시 후 울창한 숲을 빠져나오면 부대철조망과 경고판이 가로막고 우측으로 10여 분간 철조망을 따라 내려서면 부대 정문이다. (깊은 산골 팬션에서 시멘트 임도를 따라와도 된다.)

 

정문에서 오른쪽 철조망을 따라 10여 분간 진행하여 주능선에 올라선 뒤 부대 철조망을 뒤로하고 우측으로 3분 정도 올라서면 갈말458, 2007년 재설의 삼각점과 제법 너른 공터에 작은 자연석 하나를 정상석 대신 세워놓은 사향산(▲734.8m) 정상에 도착한다.(군부대의 특성상 정상석은 부대 동쪽 일반 등산로의 암봉에 세워져있다.) 이곳 역시 사방팔방 막힘없이 터지는 조망으로 이동면의 산하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산 로는 북서쪽으로 급한 내리막인데 무성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5분간 비알 길에서 씨름을 하다보면 전면으로 낭유고개로 꺾어지는 분기봉과 그 좌측으로 관음산의 일부가 보인다. 가파른 곳을 내려서면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방화선이 펼쳐지고 좌, 우로 키 큰 참나무 아래 억새들이 무성하다. 아기자기한 암 봉을 넘나들며 올라서면 벙커가 있는 분기 봉이다. 북쪽으로 산정호수와 철원시가 보이고 명성산 궁예봉도 모습을 드러낸다.

 

서쪽으로 방화선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서는 지맥은 싸리나무와 억새 등 잡목이 무성하다. 10분 정도 방화선을 따라 내려서면 큰 바위절벽 지대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돌아 벼랑길을 내려선 다음, 다시 6~7분 간 바위지대 사이로 고도를 줄이며 내려간다. 절 개지를 피해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오래된 군 시설물이 있는 339번 지방도로인 낭유고개이다.

 

차량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도로를 건너서 전신주 옆 칡넝쿨 사이로 손짓하는 리본을 따라 오르면 절개지 상단이고, 폐타이어의 길을 따라 오르면 첫 번째 헬기장이다. 제법 널찍하고 평탄한 길을 따르다 가파른 비알 길에 이르면 밧줄이 매어있다. 철망 재료들이 널려있는 헬기장 봉우리에 오르면 능선의 방향은 좌측인 남쪽으로 바뀌고 잠시 후 페인트칠을 한 종이 설치된 봉우리에 이른다. 10여 분간 가쁜 숨을 몰아쉬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관음산(733m) 정상이다.

 

너른 헬기장에 길쭉한 정상목이 서있고 한쪽에 “갈말 25, 1983년 재설”의 삼각점이 있는 이곳에서의 조망 또한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망이 가히 환상적이다. 남쪽으로 흐르는 영평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관모봉(583m)이 지척이지만, 그 뿌리는 한북정맥이 운악산을 지나 수원산(710m)에 이르러 북쪽으로 분기하는 줄기가 굴 고개(포천시와 서파검문소를 넘는 고개)를 지나 천주산(424m), 금주산(569m), 곰넘이봉(600m) 으로 연결되는 10여 km가 넘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 지맥은 북쪽으로 열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내려가는 길이야 가파른 길이라 해도 체력을 보충하며 휴식을 할 수 있는 길이라, 여유만만하게 내려딛고 빠른 속도로 진행을 하다보면 종주 길에서 이탈하기 십상이라 주의를 요하는 곳으로, 무성한 숲 아래 관음산1-4의 소방서 구조표시판이 있고, 잠시 후 녹색의 철망 안에는 태양열 시설물이 보인다. 정상에서 출발한지 20여 분만에 관음산 1-3 (소방서 구조 표시판)이 있는 봉우리에는 억새들이 무성하다.

 

좌측의 마을 이름이 파주 골인데, 이곳에는 유명한 순두부의 원조인 할머니 순두부집이 있다. 마을전체가 순두부집으로 성시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80년대만 해도 겨울이면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벽촌으로, 어쩌다 지나는 차량으로 먼지만 펄펄 나는 길가에 구멍가게를 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하루는 서울에서 관음산에 등산을 온 청년들이 추위와 허기에 지쳐 먹을 것을 찾았지만, 시골 구멍가게에 무슨 음식이 있겠는가? 생각다 못한 할머니가 두부에 김치를 내어 놓은 것이 효시가 되어 등산객들의 입소문으로 소문이 나고, 순두부집으로 변신을 한 할머니의 성공신화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관음골재 갈림길인 610봉을 지나 독도에 주의하며 좌측의 야미리와 우측의 우물목의 마을을 품에 안고 지능선을 1시간가량 진행하면 산정호수의 한화리조트로 이어지는 능선의 501봉에 올라선다. 이제 하산 길로 연결이 되고, 참나무 수림 아래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끄는 우측으로 살짝 돌아서 벙커와 시멘트 말뚝이 있는 봉우리에서 우측인 북쪽으로 내려서면 송전탑을 만들며 생긴 묵은 산판 길을 따라서 내리게 된다.

 

무성한 숲 사이로 건너편의 불무산(669m)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지맥 길은 교통호가 있는 삼거리에서 다시 우측인 북쪽으로 내려서서 좁은 공터인 316.5m 봉에 오른다. 운천의 시가지와 43번 국도위로 달리는 차량들의 행렬을 보며 오늘의 구간도 마감을 하게 된다. 의정부와 철원을 오가는 43번국도의 도내지 고개는 그 이름도 무색하게 평지의 허허 벌판으로 우측에 있는 태국 군 참전비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 6.25의 참화를 되 새겨본다.

 

                    제 3 구간 도내지 고개 - 배모루 / 18.5km

 

문암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3806부대 정문까지 가서 좌측으로 농로를 따르면 호국로 3823번지”의 신일기도원 간판이 나오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기도원 정문 직전에서 부대 철조망을 뒤로하고 전면의 소나무 아래 능선으로 붙으면 폐타이어 계단으로 연결된다.

 

곳곳에 군부대와 관계된 시설물들을 지나 기도원 입구에서 10여 분간 소나무와 잡목을 헤치며 올라서면 벙커와 나무 깃대가 꼽혀 있는 공터에 이르고, 운천 시가지와 지난 구간의 능선 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후 군부대의 비상도로가 나타나고, 전면의 무덤지대를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경사가 심해지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능선의 우측으로 검은 망이 있고, 전면의 절 개지를 기어오르면 철조망이 나타나고, 군사시설이니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문과 지뢰지대임을 알리는 경고문이 오금을 저리게 한다.

 

공군부대의 삼중 철조망이 마루 금을 가로막아 진행에 어려움이 많은 곳으로, 철조망을 따라 고생고생 끝에 일반등산로와 만나, 가파른 길이지만 편안하게 올라서면 야미리의 농촌들녘 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깃대가 서있는 봉우리를 지나 시멘트 시설의 교통호들을 지나면 거대한 벙커가 있는 불무산(668m) 정상으로 갈말 315, 2007년 재설의 삼각점과 아담한 정상 목 하나가 서있다.

 

영구적인 토치카가 정상을 2m나 높 혀 놓았는데, 왕건에게 쫒기는 궁예의 군사들은 어떻게 대거리를 하였는지? 불무산에서 패한 궁예의 군사들이 서북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은장산(456m)으로, 다음에는 국망봉(1,168m)으로 명성산(923m)으로 쫓겨 도망을 다니다 철원의 보개산성에서 최후를 맞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서북쪽으로 바라보면 궁예가 최후의 결전을 위해 한을 품고 건너간 한탄강이 종자산(643m)과 보장산(555m)을 감싸고 유유히 흐르는데, 고석정과 직탕 폭포, 순담 계곡을 돌고 돌아 박진감 넘치는 레프팅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임진강과 합류하게 되는데, 평지에 움푹 꺼진 강줄기는 그 옛날 화산의 폭발로 용암이 흘러가며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름답게 펼쳐지는 금수강산,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절규아래 철원 평야가 광활하게 펼쳐지고, 그 너머로 북녘 땅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발아래로 펼쳐지는 운천의 읍내가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역사를 아는 이 몇이나 될까?

 

6,25 전쟁으로 외국의 참전국들이 주둔하며 1970년 미군부대가 동두천으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3만여 명의 상주인구를 자랑하는 군사도시로 성시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인구 만 여명이 살아가는 영북면의 중심으로 명성산과 산정호수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불무산은 남쪽의 영중면에서 보면 중이 삿갓을 쓰고 춤추는 모양 같다는 유래에서 불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불무산의 정수리를 뒤로하고 넘나드는 암릉 길은 옹골차게 버티고선 낙락장송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저마다 가장 높다고 손짓을 하는데, 중간 봉우리에 삼각점이 있지만 정상이 아니고, 남쪽의 아슬아슬한 암능 길에서 불무산의 진수를 만끽하고, 백리 밖까지 시야를 틔우는 조망으로 한북정맥이 환상의 날개를 활짝 편다.

 

불무산 정상과 같은 벙커가 있는 648m봉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진행할 마루 금이 2-300m의 고도를 유지하는 낮은 구릉지대라 손금 들여다보듯 선명하고, 세찬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어도 건너다보이는 보장산(555m)이 더욱 정감이 가는데, 직선거리로는 6 km에 불과하지만 발아래로 펼쳐지는 종주 길은 갈 짓자 보다도 더욱 꼬부라진 사행길로 10km가 넘는 길에 미로같이 얽혀있으니 조심스런 산행길이 요구된다.

 

648봉에서 시작되는 하산 로는 북서방향으로 가파른 벼랑길이 이어지고, 발길이 별로 없는 고적한 산길에서 바위지대를 요리조리 피해가는 재미가 쏠쏠하고, 굽이쳐 흐르는 한탄강과 건너편의 종자산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전망대 바위를 휘돌아 내려서는 길가에는 싸리나무가 무성하고 고도가 낮아지면서 산딸기와 산초나무가 발목을 휘어잡는다.

 

339봉을 지나면 운산리와 대회산리를 넘나드는 군 작전도로와 만나고, 고개를 가로질러 소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면 336봉에서 남쪽을 향해 지맥이 뻗어 나간다. 높은 산이나 낮은 산이나 그 나름대로 기복이 있게 마련이라 올망졸망 연결되는 산굽이를 오르내리며 무수한 가시덤불이 앞을 가로막고, 사람하나 지나간 흔적 없이 미로를 헤매다, 군인들의 훈련장을 만나 편안하게 발걸음이 이어진다.

 

운산리의 낮은 구릉지대를 지나는 인기척에 동네의 개들이 자지러지게 짖어대지만, 대거리 할 것도 없이 묵묵히 앞만 보고 달려가는 발걸음이 271봉을 넘어 군부대의 훈련장을 내려선 방골 고개는, 창수면 오가리와 관인면 중리를 오가는 325번 지방도로인데,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한 방호벽이 육중하게 버티고 그 주위로 방공호와 연결된 토치카로 요새화 하였으니 휴전선이 멀지 않았음에 긴장감마저 감돈다.

 

소나무 숲이 무성한 묘 잔등을 지나면 산초나무와 산딸기, 억새와 진달래가 뒤엉켜 늪 속에 빠진 듯 진퇴양란에 당황하며 험로를 뚫기에 여념이 없다. 소나무숲속으로 진행되는 지맥은 인근 주민들과 군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탓에 시원하게 열리지만 10여분이면 258봉을 지나 보장산입구의 임도를 통과하리라 생각했지만 30여분을 소요한 끝에 잣나무 단지를 빠져 나올 수가 있다.

 

겨우내 오간 흔적 하나 없이 수북이 쌓인 낙엽이 급경사 비알 길에 먼지만 풀풀 날리며 발목을 뒤덮고, 한 발짝에 두 번 씩 미끄러지는 고행으로 애간장을 태우는데, 임도의 절개지를 올라설 길이 막연하다. 4-50도의 경사진 비알 길에서 진땀을 흘린 뒤에야, 리본이 무성한 일반산행 길에 도착하며 고생도 끝이 나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융단같이 부드러운 오솔길이 그림 같이 펼쳐진다.

 

한동안 낙엽 쌓인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사면을 휘돌아 오르는 임도와 다시 만나 정상까지 임도를 따르게 된다. 군인들이 훈련을 위해 만들어놓은 헬기장에는 작전 지휘소도 있고 비상도로가 정상까지 연결되어 품위가 떨어지지만 북쪽으로 한탄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의 종자산(643m)이 호형호제로 마주보고 있다.

 

서로 태어난 고향이 달라 종자산은 임진북,예성정맥(미식령산맥)으로 보개산(환희봉)끝자락에 우뚝 솟은 암봉이요. 보장산은 한북정맥 줄기 따라 광덕산에서 분기하여 명성산 -관음산 -불무산을 거쳐 이곳에 이르렀으니 북녘으로 한탄강, 남으로 영평천에 둘러싸인 수반위에 솟아오른 수려한 분재로 사방을 둘러봐도, 키 큰 형들에 응석받이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찾는 이 별로 없어도 외롭지 않다.

 

옛날부터 보물이 감추어진 산이라 하여 보장산이라 부르는 정상은 풀밭의 공터를 지나 화생방교육장의 종이 달려있는 곳이 지도상의 보장산(555m)정상이다. 서쪽으로 진행하게 될 능선이 만리장성과도 같이 시원스럽게 뻗어나가고 창옥병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오른쪽으로 가파른 비알 길에 암릉이 펼쳐지고 바위 부스러기들이 널려있어 해동기에는 낙석에 주의를 해야 한다.

 

찬바람을 맞으며 내려서는 길이지만 진행할 능선들이 선명하게 부각되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350봉에 올라서면 5그루 노송의 그늘아래 바위들이 듬성듬성 쉼터를 만들고, 내려다보이는 연수원의 푸른 숲, 그늘 속에는 동물원도 있고, 5가지 가경이 모두 모인 듯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그림 같은 방갈로가 펼쳐진다.

 

포천에는 예로부터 영평천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명승지를 골라 팔경이라 하였으니 화적연, 금수정, 창옥병, 와룡암, 낙귀정지, 백로주, 청학담, 선유담으로 보장산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운 가경이 있는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오가리라 부르고 있다.

 

좌측으로 연수원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 353봉의 정수리에 올라서면 철원319, 2007년 재설된 삼각점이 있다. 발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영평천에 산줄기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52km의 긴 여정도 막을 내린다. 석양의 햇살을 받으며 내려선 영평천은 명성지맥이 시작되는 광덕산의 백운계곡에서 발원하여 창옥병의 절경을 빗어 놓으며 한탄강과 합류하여 임진강으로 유입이 된다.

출처 : 풍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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