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백두대간

[스크랩] 한북정맥. 8 부 : 수락지맥

트둥 너굴 2009. 10. 1. 15:43

                       수락 지맥 - 약40km

                     제 1 구간: 분기점 - 담터고개 / 약 24km

수락지맥은 한북정맥이 죽엽산을 지나 무림리 고개로 이어져 남진하다 축석령 가기 전 무명봉에서 분기하여 남동쪽으로 용암산(475.4m), 수락산(640.6m), 불암산(508m), 아차산(316m)으로 이어지는 43.8km 산줄기를 일컫는다.

 

축석고개에서 광능내로 가는 314번 지방도로를 건너는 다름 고개를 만난다. 길 건너“소나무전문 판매전시장〞의 소나무 정원수가 가득한 쉼터에서 진행코스를 살펴보면, 집 뒤로 올라서야 하지만 철조망과 맹견들의 사나운 울음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 능선으로 올라서니 낮 익은 표지기가 나타난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임도를 따라가다 작은 고개에 이른다. 의정부시와 포천시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한북정맥은 우측의 좁은 길이고 좌측의 넓은 농로는 수락지맥의 들머리가 된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빈약한 언덕이 농경지로 변하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임도를 따라 지맥을 찾아가는 길은 난마와도 같이 복잡하다. 남쪽의 둔덕을 따라 10여 분간 진행하는 동안 좌측으로 무림리의 중말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중말고개를 지나 235봉을 표적으로 펜스를 따라 진행한다.

 

235봉에는 군부대의 삼각점이 있고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루동을 지나 무명봉에 올라서서 지맥은 동남쪽으로 휘어진다. 고압전신주를 바라보며 진행하면 21번과 27번 전신주를 지나 용암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주위에는 울창한 잣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제법 가파른 비알 길에서 비지땀을 흘린다. 동쪽으로 국립수목원의 울창한 삼림이 이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곳곳에 걸려있는 등산로 폐쇄 현수막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수 백 년 간 정성으로 가꾸어 온 숲을 보호하자는 호소문을 어찌 외면 할 수 있으리요.

 

용암산(477m) 정상에 오르면 삼각점과 산불 감시 초소가 있고, 이곳에서 포천시와 이별을 하고 의정부시와 남양주시가 경계를 이루는 지맥을 따라 남서방향으로 휘어진다. 울창한 잣나무 숲속에 빠져들면 햇볕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그늘 속에서 대낮에도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방향감각도 상실 한 채,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임도를 지나 개발제한 표지석과 林자가 새겨진 표지석이 있는 406봉이 지맥의 분기점이다. 직진을 하면 1km 거리에 인근에서 가장 높은 수리봉(537m)이 있고 계속 직진을 한다면 천겸산(393m)과 퇴뫼산 (367m)가는 길이다.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90도 방향을 바꾸어 내려서면, 비단같이 편하고 부드러운 지맥이 이어진다. 난마와도 같이 복잡한 알바의 구간도 벗어났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하는 도중 등산객들의 입산을 감시하는 아저씨를 만나 통사정을 하고는 범의 입에서 빠져 나온다.

 

왼쪽으로 용산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안부에서 가파른 오름길로 올라선 318봉에서는 모처럼 주위를 바라볼 수 있는 조망으로 가슴속이 후련하다. 용암산에서 수락산을 연결하는 지맥은 200여m의 고만고만한 야산을 자나게 된다. 알바를 할 염려도 없고, 활엽수림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주능선을 따르는 편안한 산행으로 모처럼 망중한을 즐기며 오르내리는 수고가 필요할 뿐이다.

 

성동 413, 1994년 재설된 삼각점이 있는 225봉에 오르면 왼쪽은 남양주시의 용산리 이고 오른쪽은 의정부시의 고산동으로 평화로운 마을이 산자락의 아늑한 보금자리에 터를 잡고 있어 모처럼 고향을 찾아온 듯 마음이 편안하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가족묘지와 어우러진 둔덕을 내려서면 행정구역으로는 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두 마을이 오가는 비루고개의 돌무더기는 한마음의 정표가 아닌가?

 

잠시 잣나무 숲길을 빠져 나오면 48번과 47번 철탑을 지나고, 도정산으로 부르는 깃대봉(288m)정상에 올라선다. 이곳에서는 수락산의 암 봉들이 날아오르는 독수리와 같이 날렵하게 바라보이고 별내면 청학리의 아파트 숲이 햇볕에 눈이 부시다. 오른쪽으로 계곡에는 약수터가 있어 인근의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 코스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가노라면 박수고개에 이르고 양지바른 야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정성들여 모신 가족 묘지들이 성역을 이루고 있다.

 

방호벽이 있는 숫돌고개. 의정부시 산곡동과 남양주시 별내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43번 국도는 수락산으로 오르는 일반 등산로의 들머리이기도 하다. 구 길의 절 개지를 치고 오르면 왼쪽으로 철조망의 펜스가 있고, 잠시 후 수락산 유원지가 시작되는 사기막 고개가 나타난다. 왕 사토에 뿌리박은 나무들 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며 산기슭을 오르면, 춘 삼월 가장 먼저 피어나는 샛노란 생강나무의 짙은 향기에 취해 마당 바위로 올라선다.

 

우리가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이, 수락산의 앞면만 보아오다 뒷면의 숨겨진 비경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250봉, 360봉, 485봉, 450봉을 차례로 오르는 암릉길은 수락산의 뒷모습을 속속들이 살펴볼 수가 있다. 내원암의 골짜기에는 금류 폭포, 은류폭포, 옥류 폭포가 있어 한 여름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비경으로 의정부 신시가지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또한 내원암의 독경소리는 가슴속의 찌든 때를 털어내는 청량제로 낭낭하게 울려 퍼지고 수락산의 명물인 기차 바위가 있는 608봉에 올라서면 가장먼저 도봉산의 전면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평일임에도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르는 등산객으로 만원을 이루고, 암릉과 소나무의 어우러짐은 우리나라 산의 특징으로 시원한 그늘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가히 절경이다. 오르내리는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길에 깊게 파이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발길에 산들이 몸살이 나고, 그늘진 휴식 터마다 진을 치는 인파로 나무 등걸이 뿌리 채 드러난다. 정상을 오를수록 인파의 행렬은 끝 간곳을 모르고 서둘러 정상(637m)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이 압권이다.

 

옛날 사냥꾼 부자가 수락산으로 호랑이 사냥을 왔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여 바위 밑에서 비가 그 칠 때까지 기다리던 중 깜빡 잠든 사이에 호랑이가 아들인 수락이를 물어가 버렸다. 잠에서 깨어난 사냥꾼은 아들 수락이를 찾아 산길을 헤매던 중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고, 그 이후 비만 오면 수락아! 수락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수락산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620봉에서 서남쪽의 지능선은 의정부시와 노원구가 경계를 이루는 줄기로 상계동으로 내려서는 등산로가 된다. 연결되는 지맥은 동남쪽 565봉의 암릉을 타고 도솔봉(510m)까지 진행하여 373봉을 넘은 후 24번 철탑을 지나, 305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덕능고개를 바라보며 진행한다. 고도를 낮추며 내려서는 등산로는 등산객의 행렬도 줄어들고 시원한 나무그늘 속으로 편안한 산길이 열린다.

 

수락산과 불암산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와도 같은 덕능고개는 노원구의 상계동과 남양주의 별내면을 넘나드는 2차선 포장도로인데 예비군 훈련장이 자리 잡고 있는 탓에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면 동물들의 이동통로가 두산을 연결하고 있어 수월하게 건널 수가 있다. 예로부터 당고개(일명 덕능고개)는 산짐승이 많아 나그네들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돌을 들고 넘었는데, 그 돌을 쌓아둔 서낭당 터가 고개에 있으므로 해서 당(堂)고개라는 유래가 있다.

 

불암산 오르는 능선은 키 작은 다복솔과 미끄러운 마사토에 암릉이 어우러진 비알길이다. 제법 가파른 길에서 쉬엄쉬엄 느린 걸음으로 뒤돌아보는 수락산이 정말로 아름답다. 등줄기에 한 줄금 땀을 흘리며 406봉에 올라서면 불암산과 수락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상계동과 별내면의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석장봉의 너른 헬기장에도 어김없이 이동주보의 커피와 막걸 리가 진을 치고, 피로회복에는 막걸리 한잔이 극약 처방이다.

 

서울특별시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에 있는 높이 508m의 불암산은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중이 모자를 쓴 부처의 형상이다. 산의 규모는 작지만 거대한 바위가 수십 길의 벼랑을 이루고 있어 위험한 곳이다. 지난 4월 이곳에서의 낙상 사고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곳이다. 18년 동안 전국의 높고 낮은 산들을 섭렵하며 700여 산을 오르던 자신감도 한 순간의 실수로 병원신세 까지 지며, ❛물을 좋아하는 사람 물에 빠져 죽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 산에서 죽는다❜는 속담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 산에 대한 두려움이 앞을 가린다.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이라고 한다. 어느 날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는 남산이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가 남산이 되고 싶은 마음에 금강산을 떠나 한양으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 도착하여 보니 한양에는 이미 남산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낙심한 불암산은 금강산으로 되돌아갈 작정으로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한번 떠난 금강산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불암산은 한양을 등지고 있는 형세라는 전설이 있다.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부스러지고 그 틈새를 비집고 뿌리내린 소나무, 만고풍상의 모진시련을 견디며 옹골차게 자라온 노송들이 불암산을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낸다. 진한 송진의 향기에 취해 십년은 젊어진 듯, 홍조 빛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깔딱 고개 내려서면 420봉의 헬기장을 만나고, 사방으로 갈라지는 등산로를 살펴가며 299봉에 내려서면 그림 같은 팔각정이 반겨준다.

 

노원고개 내려서면 이정표를 살펴가며 삼육대학 가는 길을 잊지 말자. 철문을 통과하면 삼육대학 경내가 되고 모처럼 공원을 산책하듯 제명호수에 도착하면 물 반, 고기 반, 비단잉어의 천국이다. 정문을 벗어나 4차선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삼육중학교 담장이 끝나는 사거리가 담터 고개로 제1구간의 종착점이다.

 

                   제 2 구간: 담터 고개 - 광나루역 / 16km

 

담터 고개에서부터 새우개 고개까지는 마루 금이 완전히 훼손된 상태로 현재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도로를 따라 새우개 고개에 도착하면 마주보이는 무명봉 삼거리까지도 위험하게 절개된 상태에서 공사 중이므로 우회하여 건너편에 보이는 과수원 위 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즉 담터 사거리는 태능에서 오는 길에서 직진을 하면 대전. 판교 퇴계원I.C가 되고 좌측은 의정부, 우측은 신내동 가는 이정표가 있다. 삼육 중고등학교 담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담터 추어탕 골목으로 진입을 한다. 잠시 후 경춘선 철로를 건너 47번 국도를 따라 새우개 고개까지 이동을 한다. 이곳에도 47번 국도의 확장공사가 한창이라 깊게 파인 배수로를 넘어설 수가 없어 이리저리 공사장을 피해 건너편의 과수원 위 능선으로 올라서며 긴 한숨을 내쉰다.

 

태산보다도 험준한 장애물을 넘어섰다는 안도감으로 편안하게 걸어간다. 호젓한 오솔길에는 아카시아 나무를 비롯한 잡목이 무성하고 무명봉을 올라서면 보현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난다. 편안한 길도 잠시 철조망에는 입산금지의 경고문이 미간을 찌푸린다. 사실 이곳은 구리시의 인창동에 있는 동구능의 경계지점이라 경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육중한 철조망이 앞길을 가로 막아, 토끼몰이 당하는 신세로 178m의 구릉산을 빠져 나온다.

 

사적 제193호로 지정된 동구릉은, 1408년 태조의 왕릉을 모신 뒤 건원릉(建元陵)이라 칭하고, 1855년(철종 6) 익종(翼宗)의 능인 수릉(綏陵)이 9번째로 조성되어 동구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건원릉은 태조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인 태종의 명을 받아 서울 가까운 곳에서 능지를 물색하다가 검교참찬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 김인귀(金仁貴)의 추천으로 하륜(河崙)이 택정했다고 전한다.

 

59만여 평을 헤아리는 광대한 숲에는 건원릉을 비롯해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顯陵),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능인 목릉(穆陵),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인 숭릉(崇陵),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인 휘릉(徽陵), 제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의 능인 혜릉(惠陵),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인 원릉(元陵),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능인 경릉(景陵), 제23대 순조의 세자인 익종과 신정왕후의 능인 수릉 등 9개의 능이 자리하고 있다.

 

군부대의 숙소인 아파트가 보이는 길목에는 북부간선도로가 지나고 있다. 거대한 장애물 앞에 발걸음이 멈추어지고 이리저리 살길을 찾아 구리시 쪽의 토끼 굴을 발견하고 수월하게 도로를 건넌다. 건너다보이는 야산에는 주말농장으로 계단식 밭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주능선을 올라서니 이번에는 군부대의 철조망이 가로 막는다. 철조망을 따라 진행을 하면 잣나무 조림지가 나오고 잠시 후 망우리의 가족묘지 옆으로 좁은 돌계단을 내려서면 망우리에서 교문리로 넘어가는 6번 도로와 만난다.

 

교문리 쪽으로 잠시 진행하여 남일 주유소 앞 횡단보도에서 6차선의 넓은 도로를 건넌다. 삼봉사 진입로를 따라 사찰을 경유하여 마루금으로 올라서면 그 유명한 망우리 공동묘지가 시작된다. 이동통신철탑도 지나고 망우리묘역 관리사무소 주차장에 도착하여 1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주능선에 올라서면 구리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54m봉이다. 묘역 사이 길을 지나서 허름한 쇠파이프에 확성기가 달려있는 제3보루를 통과하고 망우산 제2보루 표지판이 있는 281.3m봉에는 성동 311, 1994년 복구된 삼각점이 있다.

 

'산치성터' 작은 표지석을 지나 사각 정자가 있는 안부에 오르면 구리시와 면목동에서 올라온 인파로 만원을 이룬다. 너른 산책로의 양편으로 망자들의 유택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중심으로 천호동과 광나루, 면목동과 구리시의 시가지가 눈이 어지럽게 펼쳐지고 남산의 타워까지 선명하게 부각된다. 갈림길마다 이정표(용마산 정상2.5km, 순환도로0.5km, 동락천0.8km)가 친절하게 길을 밝혀주고 망우산(279m) 제1보루에 올라서면 삼각점과 헬기장이 있다.

 

아차산 목제 데크 계단 전망대에서 심호흡을 하며, 용마산 분기 봉(319m)에 도착하여 지근거리에 있는 용마산(△349m)을 어찌 외면 할 수 있으리요. 오른쪽 능선으로 진행하여 운동기구가 있는 공터를 지나 용마산 정상에 도착하면 1등 삼각점과 삼각추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또한 채석장을 단장하여 새로운 명소로 변신을 한 용마공원이 수 십 길 절벽 아래로 펼쳐진다.

 

용마산공원은 용마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1991년에 조성된 공원은 5만여 평의 채석장 부지에 축구장, 테니스장, 게이트 볼장, 배드민턴장과 대형 잔디광장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특히 1997년 높이 51m의 인공폭포로 조성된 용마폭포공원은 용마폭포 좌측에 21.4m의 청룡폭포, 우측에 21m의 백마폭포, 그리고 7백여 평의 연못을 조성하였다.

 

지맥의 분기봉(319m)에는 헬기장을 비롯한 휴식의 공간으로 용마산 0.5km, 순환도로 1.5km, 아차산 생태공원2.5km의 이정표가 있다. 41번 철탑을 지나면 아차산 제4보루와 아차산 정상이라 표기된 286m봉에 올라선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전망이야 끝내 주지만, 자동차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으로 도심을 뒤덮고 있는 스모그가 시야를 가리고 있다. 이천만 수도 시민들이 공해의 포로가 되어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자업자득이 아닌가?

 

아차산 제5보루인 268m봉에는 돌탑이 자리 잡고, 이곳 또한 한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으뜸이라 매년 1월 1일에는 광진구에서 해돋이 행사를 하는 명소로 꿈과 희망의 표지석이 있다. 지맥의 종주도 거의 끝이 난 듯,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된 탓인지 널찍한 등산로엔 뿌리를 드러낸 나무 등걸이 안쓰럽다.

 

삼국시대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아차산성에 도착한다. 높이 348m의 그리 높지 않은 용마봉을 정점으로 3백여m의 나지막한 아차산 봉우리들은 한강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의 아차산성은 백제 초기, 한성(지금의 경기도 광주)에 도읍을 두었을 때, 고구려의 남진에 대비하여 쌓은 성으로 한강 남안의 풍납성 및 몽촌성과 함께 백제의 철통같은 보루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차산성은 백제 책계왕이 286년에 보수 축성한 이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396년에 빼앗았다가 신라 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 260여 년간 한강을 중심으로 아차산성과 풍납토성에서 밀고 밀리는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고구려 장수왕은 475년 3만 대군을 이끌고 한강유역을 점령했고 이때 백제 개로왕이 아차산성으로 압송돼 죽음을 당했다. 그 후 백제는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천도한다. 590년에는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이자 평강공주의 남편이었던 온달장군이 실지 회복을 위해 싸우다 신라군에 의해 이 성에서 전사를 한다.

 

목책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아차산 자연공원으로 조성되어 등산로(1,500m), 배드민턴장, 씨름장, 양궁장, 모험놀이 시설, 벤치, 팔각정 등을 갖추고 있다. 갖가지 조형물로 치장을 하여 시민들의 안식처로 손색이 없다. 이곳에서 광나루역까지 지맥의 진입로가 되고 사실상의 지맥의 종주를 마치게 된다.

 

옛 문헌에 의하면 아차산에서 내려온 수락지맥의 끝이 어린이 대공원, 건국대학교 그리고 명칭만 남아있는 노유동의 노룬산을 지나 두무진(지금의 뚝섬)으로 이어진다고 하지만, 도심의 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발자취를 찾는 것도 무의미하므로 대략 3km가 넘는 길을 단축한다면 수락지맥의 길이는 40 여km가 되는 것으로 추정을 할 수 있겠다.

출처 : 풍운아
글쓴이 : 풍운아 원글보기
메모 :